문화의 정체성

문화의 정체성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자연적 존재 중에서 산과 들, 물과 개, 금과 은이 쉽게 구별될 수 있듯이, 문화적 존재 중에서도 지역과 시대에 따라 동양과 서양, 한국과 일본,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 등의 문화, 즉 인간 공동체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은 각기 무엇인가 고유한 속성이 있음을 전제한다. 이러한 속성은 자연적 존재의 경우 '본질', 문화적 존재의 경우 '정체성'이라고 불린다. 한국과 일본의 정체성을 각기 가령 붓과 칼이 갖고 있는 어떤 속성 같은 서로 다른 '원형'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본질'과 '정체성'이 가진 개념의 차이는, 전자는 다만 자연현상에, 후자는 문화현상에 관례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언어적 기능으로서 영원불변한 일종의 형이상학적 실체를 지칭하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문화의정체

그러나 가령 물의 '본질'이라 할 때 물을 규정하는 속성과 한국문화의 '정체성'이라 할 때 한국문화를 규정하는 속성은 사뭇 다르다. 전자의 속성, 즉 '본질'로 지칭될 수 있는 것이 형이상학적으로 고정된 실체를 이론적으로 지칭한다면, 후자의 속성 즉 '정체성'으로 호칭될 수 있는 속성은 어떠한 객관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실용적인 목적을 위하여 하나로 묶어 정리하기 위해서 도구적으로 고안한 개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존재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언급할 수는 있어도 문화의 형이상학적 정체성을 말할 수는 없다. 한 문화의 형이상학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한 문화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부단히 변하기 때문이다. 금고 개는 영원히 그리고 어디서나 똑같은 금이요 똑같은 개지만, 한국문화건 일본문화건 상관없이 모든 문화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엄격한 뜻에서 '한국문화'나 '일본문화', '서양 문화'나 '동양문화'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고 영원히 존재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연적 존재는 인간의 주관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그 속성과 법칙이 불가변적인 데 반해, 문화에는 인간의 주관성이 필연적으로 개입되어 그 속성이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금과 개의 속성이 어디서나 그리고 언제나 동일한 데 비해, 문화현상으로서의 음식, 제도, 관습이나, 인간 공동체로서의 국가 혹은 사회는 그것이 서양에 속하느냐 동양에 속하느냐, 한국 것인가 일 본 것인가에 따라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한 문화권에 속하는 인간들의 욕망, 기호, 지혜, 의지에 달렸다거나, 아니면 그 문화적 지리적 혹은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설명된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문화의 형이상학적 실체를 뜻하는 개념으로서의 '정체성'은 존재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도 의심받지 않았던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속성으로서, '자아'나 '주체' 혹은 '영혼'의 허구성이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드러난 오늘날, 한 생물체도 아닌 인간 집단으로서의 '문화'의 '정체성'이 허구가 아니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문화도 '정체성'으로 지칭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실체가 없다는 주장은 그러한 개념이 무용하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정체성'의 개념은 문화를 서술하고, 한 문화가 자신을 반성하고 방향을 결정하는데 극히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가령 '한국문화의 정체성', '정체성의 위기', '한국문화의 원형'이라는 말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때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한 인간 공동체의 성격을 지칭하는 말에 지나지 않으며, 그 뜻의 규정은 당연히 모호하다. 형이상학적으로 고정된 본질로서의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적 '정체성'은 인간의 얼굴에 비유하여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은 다르다. 사람마다 다른 얼굴은 어떤 형이상학적으로 고정된 실체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그 모양에 따라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동양과 서양, 일본과 한국, 고대와 근대, 중세와 현대처럼 문화적 구별이 가능한 것은 그것들이 각기 형이상학적으로 고정된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한 가지 개념으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모호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과 서양, 한국과 일본 또는 고대와 근대, 근대와 현대의 문화적 구별과 그것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말하는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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